인수대비가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폐위했던 절대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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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대비가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의 생모 윤씨를 폐위했던 절대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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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권력자가 되려는 야망
냉정함을 넘어 냉혹하기까지 했던
폭빈 이라는 별호까지 얻었는데


 


첫방부터 검색어 1순위에 오르는 인수대비


인수대비 1437(세종 19)~1504년(연산군 10)



덕종의 비로 좌의정 한확의 딸


여성의 신분을 넘어 당대 최고의 권력자가 되려는 야망과 정열

냉정함을 넘어 냉혹하기까지 했던 인수대비


성종2년에 추존하여 인수왕비 인수대비로 불림 전형적인 유가풍의 현부 일찍 홀몸이 되고 성격은 엄정하여 왕손들의 교육에서 엄하고 과실에 용서가 없어 폭빈 이라는 별호를 얻음


폐비윤씨


조선의 제9대 왕 성종의 후궁이자
두번째 왕비
10대 왕 연산군의 생모이다

야사로 전해지는 이야기에는
성종이 자신의 처소에 들르지 않고 다른 후궁들의 처소만 찾자 다른 후궁들을 질투하여 잡아다가 추궁 취조하는 등의 행위를 하다

성종의 눈밖에 났고 말싸움 중 왕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것이
발단이 되어 왕대비인 인수대비의 분노를 샀다는 설


경쟁관계에 있던 성종의 다른 후궁들이 인수대비를 찾아가 윤씨를 비판하며 그녀의 폐위를 부추기고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1479년 음력 6월 2일에 왕비에서 폐위


가난한 집에 태어나 자신의 몸 하나로 왕비가 되었으나
지나친 탐욕과 오만으로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린 폐비윤씨

하지만 인수대비가 윤씨를 폐위했던 절대적인 이유는


중전의 자리에 오른후 대군을 낳아 윤씨의 권력이 날로 치솟으며

모든 권력이 윤씨에게 집중되자 인수대비는 자신의 권력을 잃을까
일찍이 윤씨를 폐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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